금란 나눔터
어떤 작은 도시에 마틴 아브데이치라는 구두 수선공이 살았다.
그는 지하에 작은 방을 하나 갖고 있었고, 그 방의 창 하나는 길을 향해 나 있었다.
창을 통해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만 볼 수 있었지만, 마틴은 신발로 사람들을
알아보았다.
마틴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인근에서 그의 손을 한두 번 거치지 않은 신발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마틴은
창을 통해 자신이 수선한 신발들을 자주 보았다.
구두창을 간 신발, 조각을 대고 기운 신발, 터진 곳을 꿰맨 신발, 조각을 대고
기운 신발, 터진 곳을 꿰맨 신발, 아예 구두 갑피를 새로 간 신발도 있었다.
마틴은 일이 많았다.
일을 잘 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했으며, 값을 많이 부르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손님이 원하는 날까지 일을 마칠 수 있으면 책임지고 맡았고, 그럴 수 없으면
사실대로 말하고 거짓 약속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마틴은 유명해졌고 결코 일감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틴은 언제나 착한 사람이었지만,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영혼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구둣방을 차리기 전 아직 고용주 밑에서 일하고 있을 때, 마틴의 아내는
세 살배기 아들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그전에 낳은 아이들은 모두 어릴때 죽고 말았다.
처음에 마틴은 어린 아들을 시골에 있는 누이에게 보내려 했지만, 막상 아들과
헤어진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낯선 가족들 속에서 자라는건 내 어린 아들에게 힘든일이 될 거야. 내가 키워야지.
마틴은 주인을 떠나서 어린 아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틴에게는 자식 복이 없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돕고 또 아버지에게 기쁨거리일 뿐만 아니라 의지가 되는 나이에
이르자마자, 그만 병이 들어 일주일간 고열에 시달리다 죽고 말았다.
마틴은 아들을 묻었고, 감당할 수 없는 큰 절망에 빠져 신을 원망했다.
비탄에 잠긴 마틴은 자신 역시 죽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단 하나뿐인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데려가고 정작 늙은 자신을
살아남게 한 데 대해 신을 비난했다.
그후 마틴은 예배당에 나가지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틴의 고향 마을 사람이자 지난 8년 동안 순례자로 살아온
한 노인이 "트로이차 수도원" 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를 방문하게 되었다.
마틴은 노인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비애에 대해 말했다.
"저는 더 이상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신께 청하는건 빨리 죽게 해 달라는 것뿐이에요.
이제 저는 이 세상에 어떤 희망도 없으니까요."
노인이 대답했다. "자네에게는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없네.
우리는 신의 방식을 판단할 수 없어.
우리의 추론이 아니라 신의 뜻으로 결정되니까. 만일 신께서 자네의 아들이
죽고 자네가 살기를 원하신다면, 그게 최선임이 틀림없네.
자네의 절망은 자네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생기는 거야."
"그럼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마틴이 물었다.
"신을 위해 살아야 하네.
신께서 자네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자넨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해.
그분을 위해 사는 법을 배웠을 때 자넨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게 되고,
모든 게 편하게 보일거야."
마틴이 잠시 침묵한 뒤에 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신을 위해 살수 있지요?"
노인이 대답했다.
"사람이 어떻게 신을 위해 사는가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 주셨지.
자네 글을 읽을 수 있나?
그럼 복음서를 사서 읽게.
신께서 자네를 어떻게 살도록 하셨는지 알게 될 걸세.
그 안에 모든 게 나와 있어.”
노인의 말은 마틴의 가슴에 깊이 와 닿았고, 그날 마틴은 밖에 나가
큰 활자로 된 성서를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휴일에만 읽을 생각이었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자 마음이 매우
가벼워져서 매일 읽게 되었다.
때로는 읽는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책을 손에서 놓기도 전에 등잔 기름이
다 타 버렸다.
마틴은 매일 밤 성서를 읽었고, 더 많이 읽을수록 신이 자신에게 명하는 것과
어떻게 신을위해 살 수 있는지 더욱 분명히 이해했다.
그러자 마음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이전에는 잠들 때 늘 무거운 마음으로 누워서 자신의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
신음했지만, 이제는 몇 번이고 "오 주여! 당신께 영광을, 당신께 영광을!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리다!" 라고 되뇔뿐이었다.
그때부터 마틴의 모든 삶이 변했다.
예전에는 휴일마다 주점에 들러 차를 마시고, 심지어 보드카 한두 잔도
마다하지 않았다.
때로는 친구와 가볍게 한잔 걸친 후 취하지 않은 상태로 주점을 나왔지만,
오히려 흥에 젖어 바보 같은 말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욕을 했다. 이제 그런 일들은 모두 과거가 되었다.
마틴의 삶은 평화롭고 기쁨에 넘치게 되었다.
아침이면 자리에 앉아 일을 했고, 일이 모두 끝난 뒤에는 벽에 걸려 있는
등불을 가져다가 탁자에 올려놓고 선반에서 성서를 꺼내 펼쳤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잘 이해되었고, 마음속이 더욱 맑아지고
행복해지는 걸 느꼈다.

하루는 밤늦도록 자지 않고 책에 열중해 있었다.
<누가복음>을 읽는 중이었고, 6장에서 우연히 이런 구절과 마주쳤다.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 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빼앗는 사람에게는 되받으려고 하지 마라.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마틴은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이 담겨 있는 구절을 읽었다.
"너희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하면서 어찌하여 내 말을 실행하지 않느냐?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주겠다.
그 사람은 땅을 깊이 파고 반석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큰물이 집으로 들이치더라도 그 집은 튼튼하게 지었기 때문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큰물이 들이치면 그 집은 곧 무너져 여지없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런 말씀을 읽었을 때 마틴의 영혼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했다.
마틴은 안경을 벗어 성서 위에 내려놓고, 탁자에 팔꿈치를 괴고서 자신이
읽은 것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마틴은 이 말씀의 기준으로 자기 자신의 인생을 비추어 보았다.
"나의 집은 반석 위에 지어졌는가 모래 위에 지어졌는가?
반석 위에 있다면 좋을 거야.
누구든 여기에 혼자 앉아 있는 동안은 걱정할 게 없어 보이고, 누구든 신이
명하신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스스로 경계하기를 그만두자 마자 다시 죄를 짓게 돼.
그래도 난 참고 견딜 거야.
그건 기쁨을 가져다주니까. 오 주여, 도와주소서!

마틴은 계속해서 7장 - 백인대장과 과부의 아들, 요한의 제자들에게 한 대답 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바리새인 사람이 그리스도를 그의 집으로 초대한 부분에 이르렀다.
마틴은 어떻게 죄 많은 여자가 그리스도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그리스도의 발을
눈물로 적셨으며, 어떻게 그리스도가 그 여자의 죄를 용서했는가에 대해 읽었다.
44절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을 계속하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집에 들어왔을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내 발을 닦아주었다.
너는 내 얼굴에도 입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 맞추고 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지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주었다."
마틴은 이 부분을 읽고 나서 생각했다.
그 사람은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고, 입을 맞추지도 않았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지도 않았어………….
마틴은 다시 한번 안경을 벗어 성서 위에 올려놓고 곰곰 생각에 잠겼다.
그 바리새인 사람은 틀림없이 나와 같았어.
오직 그 자신만을 생각한 거야.
어떻게 하면 차 한 잔을 마실까 어떻게하면 따뜻하고 편안하게 지낼까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손님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어.
자기 자신은 돌보면서도 자신의 손님을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야.
하지만 그 손님이 누구였지? 바로 그리스도였어.
만일 내게 오신다면 나도 그렇게 행동하게 될까?
그러고 나서 마틴은 두 팔 위에 턱을 괴었고, 깜박 잠이 들었다.
"마틴!"
별안간 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마틴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것 같았다.
마틴은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누구시오?"
마틴은 주위를 둘러보고 문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목소리가 들렸고 이번에는 매우 명료했다.
"마틴, 마틴! 내가 갈 것이니 내일 거리를 내다보거라."
마틴은 정신을 차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눈을 비볐다. 하지만 그 말을
꿈속에서 들었는지 깨어나서 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마틴은 등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양배추 수프와 메밀 죽을 준비했다.
그런 다음 찻 주전자를 얹고 작업 치마를 두른 뒤 창가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그 일이 꿈인 것도 같았고, 실제로 그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이런일은 흔하잖아. 마틴은 생각했다.
그렇게 마틴은 창가에 앉아서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이 거리를 내다보았고,
누군가 낯선 신발을 신고 지나갈 때면 예의 몸을 굽혀서 위를 올려다 보았다.
발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 주택 관리인이 새 펠트 장화를 신고 지나간 뒤 물장수가 지나갔다.
이내 니콜라스 치세때의 늙은 군인이 손에 삽을 들고 창문 가까이로 왔다.
마틴은 다 닳은 가죽으로 덧댄 펠트 장화를 보고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노인의 이름은 스테파니치였다.
이웃에 사는 상인이 노인을 불쌍히 여겨 그의 집에 살게 했고, 대신 노인은
그집의 수위를 하며 돕고 있었다.
스테파니치는 마틴의 창문앞에서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마틴은 노인을 흘긋 보고 나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정신이 어떻게 된 게 분명해."
마틴이 자신의 공상을 비웃으며 말했다.
"스테파니치는 눈을 치우기 위해 와 있고, 난 어떻게든 그리스도가
나를 찾아오신다고 상상하고 있어. 내가 노망이 난 거야!"
그러나 마틴은 열두 바늘을 꿰맨 뒤 다시 창문을 내다보게 되었다.
스테파니치가 삽을 벽에 세워 놓은 채 잠깐 쉬거나 몸을 녹이려 하고 있었다.
스테파니치는 늙고 쇠약했으며, 분명 눈을 치울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들어오라고 해서 차를 마시게 하는 건 어떨까? 마침 찻 주전자도 끓고 있고'.
마틴은 송곳을 제자리에 꽂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찻 주전자를 가져다가 차를 만든 뒤 손가락으로 가볍게 참문을 두드렸다.
스테파니치가 몸을 돌려 창가로 왔다.
마틴은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했고 문을 열기 위해 나갔다.
"들어와서 몸 좀 녹이세요. 분명 추우실테니."
"신의 축복이 있기를! 정말 뼛속까지 춥군요."
스테파니치는 문 앞에 서서 우선 눈을 털어 내고 바닥에 얼룩이 지지 않도록
발을 딱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 비틀거렸고 거의 넘어질 뻔했다.
"수고스럽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바닥은 제가 닦으면 돼요. 그건 제가 늘 하는 일이죠.
자, 어서 와서 차 한잔 드세요."
마틴은 큰 잔 두 개를 가득 채워서 하나를 자신의 손님에게 건넸다.
그리고 자신의 차를 따르고 호호 불기 시작했다.
스테파니치는 차를 다 마시고 잔을 엎어 놓은 뒤, 그 위에 남은 설탕 조각을
올려놓았다.
스테파니치는 감사를 표했지만, 어떤지 아쉬운 듯 보였다.
"한 잔 더 드세요."
마틴은 손님과 자신의 잔을 다시 가득 채웠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동안 마틴은 계속 창밖을 내다보았다.
"누굴 기다리시나요?"
"아. 제가 그렇게 보입니까? 말씀드리기 부끄럽군요.
실은 아무도 기다리고 있지 않지만, 간밤에 들은 말을 떨쳐 버릴수가 없어서요.
그게 선견이었는지 아니면 제 공상에 불과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간밤에 복음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고난을 받으셨고,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에 대해 말이에요. 아마 들어 보셨을거예요."
"네, 들어 보긴 했지만 저는 무식쟁이라 글을 읽을 줄 모릅니다.
"그러시군요. 저는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행하신 일들을 읽고 있었지요.
한번은 한 바리새인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고 가셨는데, 그곳에서 대접을
잘 받지 못하셨어요.
그 부분을 읽으면서 그 바리새인 사람이 마땅한 예로 그리스도를 맞이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만일 그런 일이 나 같은 사람에게 일어난다면, 나는 그리스도를 맞아
과연 무엇을 했을 것인가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바리새인 사람은 주님을 전혀 환영하지 않았어요.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꾸벅 졸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제 이름을 불렀어요.
저는 잠에서 깼고, 내일 갈 것이니 나를 기다려라.' 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지요. 두번이나 말이에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말이 너무나 제 마음 깊이 새겨져서, 부끄럽기는 하지만
내내 주님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테파니치는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고, 잔을 비운 뒤 옆으로 뉘여 놓았다.
하지만 마틴이 다시 잔을 세워서 차를 따라 주었다.
더 드세요.
신의 가호가 있기를!
저는 또한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계실 때 아무도 멸시하지 않으셨고,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는 평민들과 함께 길을 가셨고, 우리 같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처럼
노동하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같이 죄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제자들을 선택하셨지요.
그리스도는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너희가 나를 주(主)라고 부르면 내 너희의 발을 씻겨 주리라.',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을 모두의 종이 되게 하여라.
가난하고 비천하고 온유하고 자비로운 사람에게 복이 있기 때문이다."
스테파니치는 차를 마시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는 쉽게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노인이었고, 의자에 앉아 마틴의 말을
들을때 눈물이 그의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 차 드세요."
마틴이 말했지만, 스테파니치는 성호를 긋고 감사를 표한뒤 잔을 치우고 일어났다.
"마틴 아브데이치, 고맙습니다.
당신은 내게 영혼과 육신 모두를 위한 양식과 위로를 주었어요."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스테파니치가 떠나고, 마틴은 남은 차를 마저 따라 마셨다. 그러고 나서
찻 주전자와 잔들을 치우고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구두 뒤쪽의 이음매를 꿰매면서 계속 창밖을 내다보았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마틴의 머릿속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가득했다.

군인 두명이 지나갔다.
하나는 관(官)의 신발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수선한 신발이었다.
이웃집 주인이 번쩍이는 덧신을 신고 지나간 다음, 빵을 굽는 사람이
바구니를 들고 지나갔다.
그때 한 여자가 털실 양말에 농부들이 만든 신발을 신고 나타났다.
여자는 창문을 지나쳤지만 벽 가까이에 멈춰 섰다.
마틴은 창문을 통해 여자를 흘긋 올려다보았다.
초라한 행색으로 아기를 팔에 안고 있는 낯선 여자였다.
여자는 벽 가까이 바람을 등지고 서서 아기를 따뜻하게 감싸려고 했지만,
아기를 감쌀 만한 변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여자는 여름옷만 걸치고 있었는데, 그것조차 다 낡고 해져 있었다.
마틴은 창문을 통해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여자가 아기를 달래기 위해 애썼지만 아기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마틴은 자리에서 밖으로 나갔고 계단을 올라 여자를 불렀다.
"부인, 부인!"
여자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추운 날씨에 아기를 안고 왜 그런 곳에 서 계십니까?
안으로 들어오세요.
따뜻한 곳에서 아기를 달래는 게 더 낫지요. 이쪽이에요!"
여자는 작업 치마를 두르고 코에 안경을 걸친 노인이 자신을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지만, 노인의 말을 따랐다.

두 사람은 계단을 내려가 작은 방으로 들어갔고, 마틴은 여자를 침대로 안내했다.
"거기 난로 가까이 앉아요. 몸을 녹이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세요."
"젖이 안 나와요. 제가 새벽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요."
그러면서도 여자는 계속해서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마틴은 고개를 흔들었고, 큰 그릇과 빵을 꺼냈다. 그릇에 양배추 수프를
담아서 데우고 죽 냄비를 꺼냈지만, 죽은 바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
마틴은 식탁에 천을 깔고 우선 수프와 빵을 내왔다.
"앉아서 먹어요. 아기는 내가 돌볼 테니.
나도 아이들을 키워 봤기 때문에 아기 다루는 법을 알지요."
여자는 성호를 그은 후 탁자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동안 마틴은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자신도 그 옆에 앉았다.
마틴은 입으로 소리를 내며 아기를 얼렀지만 이가 없어서 소리가 잘 나지 않았고
아기는 계속 울었다.
이번엔 마틴이 손가락을 아기에게 바싹 갖다 대는 시늉을 했다.
손가락 하나를 곧장 아기의 입으로 가져갔다가 재빨리 뒤로뺏고, 이런 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다.
하지만 아기가 손가락을 무는 일이 없도록 조심했다.
손가락이 왁스로 온통 얼룩져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아기는 손가락을 쳐다보며 조용해졌고, 이내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틴은 큰 기쁨을 느꼈다.
여자는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또 어디에서 왔는지 이야기했다.
"제 남편은 군인 이에요. 8개월 전 당국에서 남편을 어디론가 아주 멀리 보냈고,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못 듣고 있어요.
저는 요리사로 일하며 지내는 곳이 있었는데, 아기가 태어나자 더 이상 저를
데리고 있으려 하지 않았죠.
3개월 동안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살 곳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먹을 것을 사기 위해 가지고 있던 모든 걸 팔아야 했어요.
유모 자리를 알아봤지만, 아무도 절 쓰려고 하지 않았어요.
제가 너무 굼주려 보이고 야위었다고 말하더군요. 지금 저는 어떤 상인의
아내를 만나기 위해 왔어요.
그분이 절 받아 주기로 약속하셨거든요.
저희 마을에 살던 여자가 현재 그분 밑에서 일하고 있지요.
마침내 모든 게 해결 됐다고 생각했는데, 다음주까지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그곳까지는 길이 먼데, 전 너무 지쳤고 이 가엾은 아기는 몹시 굶주렸어요.
다행히 여관집 주인이 우릴 불쌍히 여기고 무료로 묵게 해 주셨지요.
하지만 이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마틴은 한숨지었다.
"좀 더 따뜻한 옷은 없나요?"
"따뜻한 옷을 어떻게 구할 수 있겠어요?
어제 마지막 남은 숄을 저당잡히고 6펜스를 받았는걸요."
여자가 와서 아기를 안았다.
마틴은 일어나서 벽 쪽으로 갔고, 벽에 걸려 있는 것들 가운데 낡은 외투를
갖고 여자에게 왔다.
"받아요. 닳고 해지긴 했어도 아기를 감싸는 데 적당할 거예요."
여자는 외투를 쳐다보고 나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외투를 받아 들고서 와락 눈물을 터뜨렸다.
마틴은 돌아서서 침대 밑을 손으로 더듬었고, 작은 가방을 하나 꺼냈다.
그 안에서 뭔가를 찾더니 다시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자 여자가 말했다.
"신께서 당신을 축복하실 거예요.
분명 그리스도께서 저를 당신의 창가로 보내신 게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 아이는 꽁꽁 얼어붙고 말았을 테니까요.
제가 길을 나설 때는 따뜻했지만 갑자기 이렇게 추워졌어요.
분명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창밖을 내다보게 하고 이 가엾고 불쌍한 사람에게
동정을 베풀도록 하신 게 틀립없어요!"
마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정말 사실이지요.
나를 그렇게 하도록 만드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니까요.
내가 창밖을 내다본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어요."
마틴은 여자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했고, 그날 자신을 찾아오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어떻게 들었는지 말해 주었다.
"혹시 모르잖아요? 모든 일이 가능하니까요."
여자가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자신과 아기를 꼭 감쌌다.
여자는 머리 숙여 인사를 한뒤 마틴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말했다.
"부디 이걸 받으세요."
마틴은 저당 잡힌 숄을 찾을 수 있도록 6펜스를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성호를 그었고 마틴도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 여자는 문밖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창문을 잊지 않았고, 창가에 그림자가 비칠 때마다 고개를 들어
지나가는 사람을 올려다 보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과 낯선 이들이 지나갔지만, 남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후 마틴은 사과 행상인 노파가 자신의 창문 바로 앞에 멈춰서는 것을 보았다.
노파는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 사과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대부분 팔린 게 분명했다.
등에는 나무토막이 가득한 자루를 지고 있었는데, 집으로 가져갈 것들이었다.
아마도 건물을 짓는 곳에서 그러모았을 것이다.
자루는 노파를 힘들게 했고, 노파는 한쪽 어깨에서 다른 쪽 어깨로 바꿔
메기 위해 자루를 길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바구니를 받침대에 올려놓은 뒤 자루에 있는 나무토막을 흔들어
고르기 시작했다.
노파가 그러고 있는 사이 누더기 모자를 쓴 사내아이가 달려와서 바구니
안에 있는 사과 하나를 낚아채더니 슬그머니 사라지려 했다.
하지만 노파가 그것을 알아채고 돌아서서 소년의 소매를 붙잡았다.
소년은 버둥거리기 시작했지만, 노파가 두 손으로 꽉 붙들고 모자를 냅다
벗긴 뒤 소년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소년은 비명을 질렀고 노파는 호통을 쳤다.
마틴은 미처 송곳을 제자리에 놓아둘 새도 없이 급하게 문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오르다 넘어질 듯 비틀 거리고 서두르는 바람에 안경을 떨어뜨리며
거리로 달려 나왔다.
노파는 소년의 머리칼을 잡아당기며 호되게 꾸짖었고, 경관에게 넘기겠다고
위협했다.
사내아이가 버둥질 치면서 항의했다.
"전 훔치지 않았어요. 왜 때리시는 거예요? 놔주세요!"
마틴이 두 사람을 떼어 놓은 뒤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 아이를 가게 해 주세요. 부디 아이를 용서하시구려."
"일년 동안 잊지 못하게 혼쭐을 내줄 거예요!
이 못된 녀석을 경관에게 넘기겠어요!"
마틴은 노파에게 간청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보내 주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부디 아이를 가게 해 주세요!"
노파는 아이를 가게 했고 소년은 도망치길 원했지만, 마틴이 소년을 막아섰다.
"할머니께 용서를 빌어야지! 그리고 다시는 그러면 안 돼.
나는 네가 사과를 훔치는 걸 봤어."
소년은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고 용서를 구했다.
"이제 됐다. 그리고 이 사과를 가져가거라."
마틴은 바구니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소년에게 주었다.
"돈은 제가 드리겠습니다."
"그건 저 아이를 더 망치는 거예요."
노파가 말했다."저 아인 일주일 동안 잘못을 잊지 않도록 매를 맞아야 해요."
"그건 우리의 방식이지 신의 방식이 아닙니다.
만약 사과를 훔쳤다고 매를 맞아야 한다면, 우린 우리의 죄에 대해
어떤 벌을 받아야 할까요?"
노파는 침묵했다..

마틴은 노파에게 성서에 나오는 비유담을 들려주었다.
어떤 주인이 종의 많은 빚을 탕감해 주었는데, 그 종이 밖에 나가서
그에게 빚진 사람의 멱살을 잡더라는 이야기였다.
노파는 귀 기울여 들었고, 소년 역시 옆에 서서 경청했다.
"신께서는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용서받지 못할 테니까요.
모든 사람을 용서하시고, 그중에서도 아직 생각이 모자라는 아이들을 용서하세요."
노파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씀이지만, 그럼 아이들이 아주 못쓰게 될 거예요."
"우리 나이 든 사람들이 보다 나은 방식을 가르쳐 줘야 하지요."
마틴이 대답했다.
"바로 그거에요, 나한테는 자식이 일곱 명 있었는데, 오직 딸 하나만 남았어요."
노파는 자신이 딸과 함께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으며, 손자 손녀가 몇 명이나
되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내겐 기운이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난 손자 손녀들을 위해서 일하지요.
아이들은 모두 착해요.
날 반기며 달려 나오는 건 오직 아이들뿐이에요.
한 아이는 '할머니' 사랑하는 할머니, 소중한 할머니! 하면서 내 옆을
떠나려고 하지 않아요.
노파는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완전히 누그러졌다.
"단지 어리기 때문에 그랬던 거예요. 딱하게도."
노파가 소년을 언급하며 말했다.
노파가 막 자루를 등에 지려고 하는데 소년이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할머니, 제가 들어 드릴께요. 저도 그쪽으로 가거든요.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고, 자루를 소년의 등에 얹었다.
두 사람은 함께 거리를 걸어갔고, 노파는 마틴에게 사과 값을 받아야
한다는 걸 완전히 잊어버렸다.
마틴은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마틴은 집으로 돌아갔다.
계단에 떨어졌던 안경은 깨지지 않았고, 마틴은 송곳을 집어 들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뻣뻣한 실이 가죽 구멍 사이로 어떻게 통과하는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이내 마틴은 가로등의 불을 밝히는 사람이 지나가는 걸 보게 되었다.
"등불을 켤 때가 됐구나."
마틴은 등불을 켜서 걸어 놓고, 다시 앉아서 일을 했다.
구두 한 짝의 마무리 손질을 끝내고 빙 돌려 살펴보았다.
더 이상 손볼 데가 없었다. 마틴은 연장들을 한데 모으고 잘려진 것들을
쓸어 담은 뒤 구두를 꿰매는 실과 바늘, 송곳들을 제자리에 놓고 등불을
탁자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선반에서 복음서를 꺼냈다. 모로코 가죽으로 어제 표시해 둔 부분을
펼치려고 했는데, 책의 다른 쪽이 펼쳐졌다.
마틴이 책을 펼쳤을 때 어제의 꿈이 떠 올랐고, 꿈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마치
누군가 뒤에서 걷고 있는 듯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마틴은 뒤를 돌아보았고, 어두운 구석에 사람들이 서 있는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귓가에 음성이 들렸다.
"마틴, 마틴, 나를 모르느냐?
"누구십니까?"
마틴이 중얼거렸다.
"나였는니라."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리고 노파와 시과를 든 소년이 걸어 나와 미소를 짓더니 또한 사라져 버렸다.
마틴의 영혼은 기쁨으로 차올랐다.
마틴은 성호를 긋고 안경을 쓴 뒤 복음서의 바로 그 펼쳐진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위쪽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 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마틴은 그 면의 마지막 구절을 읽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이제 마틴은 자신의 꿈이 실현되었고, 구주(救主)께서 정말로 그날 자신에게 오셨으며,
자신이 그분을 기쁘게 맞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885년
사람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톨스토이
2009년 을 보내면서









크나큰 감동을 안고
다녀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