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과 러시아 선교, 하나님을 누리다가 왔습니다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 무엇일까요??

시간을 따라 나타나는 모든 상황을
그대로 긍정하면서 누리는 것이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벽에 찬양과 말씀과 기도의 시간에 예배가 전부인양 푹 빠져듭니다.
식사 시간에는 기쁨과 감사로 열심히 먹어 치웁니다(?).
진료 시간에는 환자 한분 한분을 예수님처럼 대하며 오직 치료에만 전념합니다.
중풍 병자가 들 것에 실려 오든지, 귀머거리 환자가 오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일하시겠구나하면서
담담히 대합니다.

찜통 같은 더위로
땀이 가운 속에서 줄줄 흘러 내리는 상황에서
일부러 선풍기를 피해서 하루를 지내 보았습니다.
힘든 상황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므로
그대로 누리려고 했습니다.

땀으로 목욕하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했지만,
이렇게 하루를 지내고 나니까 이 정도 더위쯤 얼마든지
이길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장님께서 아침 예배 시간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상황을 견디려고 하지 말고,
누리라
불속에 들어가서 버둥거리다가 타는 재가 되지 말고
불이 되어 불을 더 뜨겁게 태우라
하늘을 바라만 보는 자가 되지 말고
하늘이 되라

그렇습니다.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자그마한 산체험을 했습니다.
믿음은 깨닫고 나누는 것에 그치면 거품이 되고,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살아 낼 때,
실제가 되는 것이랍니다.

곧 다시 오실 예수님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하나님께 답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얼마전부터 예수님의 재림이 너무나도 간절히
사모되어 지면서
기름을 준비하는 열처녀 비유가 실제가 되었습니다.
그 열처녀는 모두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알고 믿고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들이며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다섯은 기름을 준비했고
나머지 다섯은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다섯에게는 예수님 다시 오심이 실제였습니다.
나머지 다섯에게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이
피상적 얘기였습니다. 그냥 이론이었겠지요.

사실 2천년전 사도들도 자신들 살아 생전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주후 이천년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받아 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합당할지
이번 선교 기간 내내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고픈
저의 간절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는
따뜻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 믿음이 네게 가장 큰 은혜요 축복이다."

그렇습니다. 비록 오백년 또는 천년후에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 할찌라도

곧 오신다고 믿으면서 살면
무엇을 버리고 살아야 할지
무엇을 최우선 순위로 살아야 할지
제 삶의 방향이 더욱 명확해지고
더 귀한 것을 붙잡고 살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이 시간계 안에서
내가 호흡을 하는 동안
저의 가장 확실한 실제로 믿는 것이
영생을 준비하는 가장 큰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제가 살아 생전에 오시지 않으면
제가 주님께로 가서 직접 만나뵐 것입니다.

기름을 준비하는 것은 말씀이 말씀되게 하시는 것과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를 누리는 것이겠지요.

말씀이 말씀되고 성령님의 임재로 드리는 예배와 기도는
이 공간을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고 확보하는
영적 승리 자체입니다.

우리 금란교회 지체분들의 기도를
선교현장에서 40도가 넘는 열기보다
더 뜨겁게 느꼈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는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악한 영의 힘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금란식구들의 부르짖음으로 이 공간에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고 확보됨을 실제로 느끼면서
중보기도의 능력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써주소서"

우리가 드린 이 찬양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이미 이 공간에 새겨져 있습니다.

모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 드린 이 고백을
우리가 헛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타직키스탄에서 러시아 선교를 위해서
몇개국을 거쳐 열흘간 험한길을
차 3대에 나누어 타고 오신 목사님과 현지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노정에서 식사를 해드시면서
어두워지면 적당한 장소에서 텐트를 치고 주무시면서
사도바울의 전도여행처럼
오신 분들이
다시 열흘간의 여정으로 되돌아 가시고 있습니다.

아직 선교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우리의 발걸음은 쉬지 않을 것이고,
사도행전 29장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