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란 나눔터
지난 해 12월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좋은 신문 칼럼이 있어 글을 옮겨 적었습니다.
모든 분들이 읽어 볼 필요있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과연 무엇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인지..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순종이 되기를 바라면서...
순종의
값, 불순종의 값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순종입니다.”
어느 교육학자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교육은 근본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교육이란 비교적 성숙한 자가 비교적 미 성숙한 자를 성숙단계로 변화시키려는 모든
과정’이라고 소박하게 정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이
교사의 지시를 사사건건 거역한다면 그 학생이 배울 것은 불순종 밖에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책을
읽어 오라는데 전혀 들춰볼 생각도 않고 노래를 외워 부르라면 한마디에 거절하고, 붓글씨를 쓰라면 앉아
있는 학생이 있다면 교육이 어찌 진행되겠습니까?
아픈 아이에게 부모가 병원엘 가자는데 다른 곳으로 도망가 버리면
죽음의 길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차 운전할 때 빨강 신호를 무시하고 사거리를 빠른 속력으로 질주하게
되면 교통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군대에 가면 더 합니다. 명령불복종자는 아예 감옥에 집어 넣습니다. 만약에 그것이 전쟁터라면
즉결총살까지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무엇보다도 앞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온 세상의 모든 교육과 제도는 순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순종에 관한 교훈이 많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 상전에게 순종하라, 남편에게 순종하라, 통치자에게 순종하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
심지어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삼상15:22)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드릴 때에는 시간을 꼭 지키는 일부터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까지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가지고 순종해야 합니다. 예배가
끝나면 그 때부터는 예배에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생활에서 실천해 나가는 것이 바른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불순종은 백해무익한 것일까요? 무엇 하나라도 불순종하는 사람은 반역자로 처형해야 마땅할까요? 사극에서
보는 것처럼 옛날 왕들은 그랬습니다. ‘지엄하신’ 왕명을
거역한 까닭에 당장에 능지처참을 당한 사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도 모가지를 내어 놓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헤롯왕에게 복종민 했다면 목이
잘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요한 칼뱅, 요한 후스 같은 교회개혁 지도자들도 그런 인물들입니다. 만약 그들이
당시의 교회법에 순종만 했다면 평안하게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보면 불순종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대제사장에게 불순종, 성경학자들에게 불순종,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에게 불순종, 죄인들과 이방인들과 어울리심으로 정결예법에 불순종, 가출하심으로 어머니에게 불순종, 헤롯왕을 여우라며 불순종… 그런 분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얻은 신앙원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에게 참되게 순종하기 위하여서는 인간의 왜곡된 명령에는 불순종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방침, 나라의 법, 부모가 요구가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면
물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라면 단연 불순종을 선택해야
합니다. 맹목적 순종에서 벗어나 정의로운 순종의 길을 선택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개혁’ 500주년을 몇 해 앞두고 꼭 되새겨야 할 교훈이 잇습니다. 로마교황청
칙사가 마틴 루터를 재판정에 세우고 이단으로 정죄했습니다. 그 때 루터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내가 교황에 대한 이단이라면 교황은 하나님에 대한 이단자일 뿐이오”
이정근/미주 성결대 명예총장
2011년12월15일 크리스천 뉴스위크 칼럼에서..








